요한복음 18:15 - 27절 요한이 본 베드로의 삼중 부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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요한복음 18장에 기록된 베드로의 세 번에 걸친 예수님 부인 사건은 복음서
전체에서 가장 가슴 아픈 장면 중 하나입니다. 마태, 마가, 누가복음(공관복음)
에도 이 사건이 모두 기록되어 있지만, 기록자 요한의 시선은 베드로를 향해
비난의 화살을 돌리기보다 매우 독특한 문학적, 신학적 구도를 통해 이 사건
을 조명해 봅니다.
요한복음 18장에 나타난 요한의 시선과 그 안에 담긴 신학적 연구 핵심을 네
가지 관점으로 분석해 드립니다.
1. '샌드위치 구조'(심문과 부인의 교차 배치)를 통한 극적 대조
요한은 베드로가 부인하는 장면을 한 번에 몰아서 쓰지 않고, 예수님이 대제사
장 안나스에게 심문받으시는 장면 사이에 교차로 배치했습니다.
- 첫 번째 부인 (18:15-18) – 문 지키는 여종 앞에서의 부인
- 예수님의 심문 (18:19-23) – 당당하게 진리를 증언하시는 예수님
- 두 번째, 세 번째 부인 (18:25-27) – 불을 쬐던 중 사람들과 말고의 친척
- 앞에서의 부인
요한의 시선:
요한은 목숨이 위태로운 대제사장 앞에서 자신을 당당하게 증언
하시는 예수님의 '신실함(Faithfulness)'과, 한낱 종들 앞에서 주
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숨어버리는 베드로의 '약함(Weakness)'
을 극명하게 대조시킵니다. 베드로의 실패를 부각함으로써 도리어
예수님의 메시아적 용기와 신성을 더 빛나게 만드는 구도입니다.
2. "내가 그니라(에고 에이미)" vs "나는 아니라(우크 에이미)"의 신학적 대조
요한복음에서 가장 중요한 예수님의 자기 계시 표현은 "내가 그니라(Ego
Eimi, I am)"이다. 바로 앞 장면인 동산 체포 씬(18:5)에서도 예수님은 군사
들 앞에서 "내가 그니라"라고 당당히 선언하셨다.
반면, 18장에서 여종과 사람들이 "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?"라고 물었
을 때, 베드로가 한 답변은 헬라어 원어로 "우크 에이미(Ouk Eimi, I am not)",
즉 "나는 아니라"였다.
- 예수님: 목숨을 잃을 위기 앞에서도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내심 ("내가
- 그니라")
- 베드로: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지워버림 ("나는 아니라")
요한은 이 단어의 대조를 통해 베드로가 단순히 예수를 모른다고 거짓말한 것
을 넘어, 예수의 제자로서의 자기 정체성 자체를 부인했음을 날카롭게 포착하
고 있다.
3. '숯불'이라는 상징적 무대 배경
요한복음 18장 18절은 대제사장의 집 뜰이 추웠기에 종들과 아랫사람들이 '숯불
(Anthrakia)'을 피웠고, 베드로도 그 곁에 서서 불을 쬐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.
- 성경 전체에서 '숯불'을 뜻하는 헬라어 단어 '안트라키아'는 딱 두 번 쓰이
- 는데, 두 번 다 요한복음에만 나옵니다.
- 첫 번째가 바로 여기 18장 베드로가 부인하던 대제사장의 뜰이며, 두 번
- 째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디베랴 바닷가에서 낙심한 제자들을 위해 고기를
- 구워 두셨던 21장 9절의 숯불입니다.
요한의 시선:
요한에게 숯불은 '배반과 수치의 장소'이자 동시에 '회복과 용서
의 장소'라는 이중적 상징입니다. 18장에서 숯불 앞에 서서 주님
을 부인했던 베드로는, 21장에서 예수님이 피워놓으신 또 다른
숯불 앞에서 "네가 나를 사랑하느냐"라는 세 번의 질문을 받으며
영혼의 치유를 경험합니다. 요한은 18장의 실패를 기록하면서도,
이미 21장의 위대한 회복을 염두에 두고 이 무대를 설정한 것이다.
4. 또 다른 제자(요한 자신)와의 대조
18장 15절에는 시몬 베드로 외에 "또 다른 제자 한 사람"이 예수를 따랐
다고 나온다.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잘 아는 사이여서 베드로를 대제사장
의 집 안뜰로 들어올 수 있도록 문 지키는 여종에게 말해 주었다. 혹자들은
이 '다른 제자'를 기록자인 요한 자신으로 추정하고 있다.
요한은 대제사장의 집 안뜰이라는 위험한 공간에 베드로를 진입하게 한
인물로 자신을 기록합니다. 결과적으로 베드로가 시험에 들게 된 원인을
제공한 셈인데, 요한은 자신이 아는 여종에 의해 베드로가 첫 번째 부인
을 하게 되는 과정을 담담하고도 세밀하게 서사적으로 기록하고 있다.
이는 사건의 객관성을 높이는 동시에, 인간의 연약함이 폭로되는 현장을
목격자의 시선으로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.
연구의 결론: 실패마저 포용하는 주권적 사랑
요한복음 18장에서 요한이 바라본 베드로의 부인은 결코 '영원한 파멸'이
아닙니다. 예수님은 이미 13장 최후의 만찬에서 "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
나를 부인하리라(13:38)"고 예언하셨고, 베드로가 세 번째 부인을 하자마
자 닭이 곧 울었다(18:27).
요한의 신학적 시선 안에서 베드로의 부인은 인간의 철저한 무능력을 폭
로하는 사건인 동시에, 그 모든 실패까지도 다 알고 계시며 제자들의 발을
씻기셨던 예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예지(Foreknowledge) 안에 포용되
어 있는 사건이다. 결국 요한은 이 부인 사건을 통해, 기독교의 구원은 인
간의 굳은 결단이나 의지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 위에
세워진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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Jewooklee님의 댓글
지난 5월 중순에 밤 나무 묘목을 해 놓았던 것 중에서 30여 그루를
구덩이를 삽 한 자루 이상 깊이로 파고, 계분 발효 거름을 한 삽 이상
넣고, 아주 정성을 다해 아주 좋은 자리에 이식을 해 주었다. 그러고
지난 한 달여 기간 동안 정성껏 물을 주었다. 그런데, 지난 한 달 동안
애틀란타에는 거의 비가오지 안았다. 그래도 열심히 물을 주느라고
신경을 썼지만, 벌써 반 이상은 말라서 죽고, 그저 10여 그루만 예쁘
게 잘 자라고 있다. 그런데, 죽게된 이유중에 하나가 안식일에 물을
주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. 그나마 살아 남은 것들만 잘 길러도
저희 식구들 실컨 먹고 또 몇몇 줘보고 싶은 분들 나눠주며 충분히
살 수가 있다. 그런데, 진짜로 중요한 문제는 걔들이 잘 자라서 수확을
할 때이다. 토실 토실 잘 익은 알 밤들을 주워야 하는데, 안식일에는
어떻게 해야 되겠는가? 이제까지는 몇 그루 안됐으니까 어떻게, 어떻게
잘 지나갔는데, 수확해야 할 밤 나무가 열 그루, 스무 그루가 되면, 그게
보통 큰 일이 아니다. 상추, 오이, 호박, 고추, 오크라, 파, 마늘, 더덕, 도
라지, 딸기, 블루베리, 밤, 감, 대추, 포도, 여러가지 농작물들을 조그마치
경작을 할 때는 괜챦은데, 좀 많은 양을 재배를 하다보면 어떤 때는 안식
일에 하기에는 이건 노동이다. 싶을 때가 있다. 저희 집에는 개 다섯마리
고양이 세 마리, 닭 네 마리를 키우고 있다. 안식일에도 걔들을 굶길 수 없
으니 먹이를 주는데, 사료, 우유, 빵에 땅콩 버터를 발라서 한쪽씩 주다보
면 그게 20 - 30분 일이다. 거기다가 더러는 안식일 이지만, 분료를 치워
줘야 할 때가 있다. 그러니? 그나마 조그맣게 소일삼아 시작한 전원 생활이
지금은 소홀챦은 일거리가 됐다. 그렇다고 바리새인들 처럼, 다 때려 치울
수도 없고, 사두개인들 처럼, 부활도, 영도, 천사도 없으니 다 괜챦다고 할
수도 없는 것이다. 유다나 베드로 처럼 예수님을 잘 따라서 다니다가 결국
에는 배반의 자리에 서게 되었던 것처럼 "달아보니 부족함이 뵈었다." 한
다면 이건 뭐 아무것도 아닌 꼴이 되는 것이다. 다행히 저희가 하는 농사가
아직은 안식일을 범해야 하는 정도는 아니어서 다행이지만, 참 재미있게
취미삼아 가꿔왔던 즐거움도 언젠가는 다 정리를 하고, 깨끗하고, 깔끔하게
살아가야 할까를 생각중이다. 오늘 아침에도 오이 여덟개, 딸기, 애 호박 하나,
아삭이 고추 12개, 토마토 2개, 부추 한 단, 계란 네개를 거두워 드렸다.
싱싱하고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첫 열매들을 수확하고, 이렇게 저렇게 조리
를 해서 먹는 맛이 그야말로 천하 일품이다. 아무리 맛이 있고 좋아도 안식
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과는 바꿀수 없는 철칙이니 그것이 아주 큰 문제이다.
